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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 ; 조금 더 진화된 인간

by 아도비 2021.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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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 ; 조금 더 진화된 인간

 

나는 공황장애 환자다.

작년 처음으로 증상이 생겼고 벌써 1년 4개월째 진행형이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3초 후 질식해 죽을 것 같은 상태를 한 달간 겪은 후 병원을 찾았다.

소개로 찾은 병원은 2주 뒤에 나 예약이 가능했고 지옥 같은 2주를 보냈다.

처음에 난 공황장애란 연예인병이라 생각했다.

흔히 연애인병이라 일컫는 뜻과는 달랐지만 유명 연예인들의 공황장애 소식을 접했었고

공황장애와 아무런 연관이 없던 나에게는 그저 '연예인들은 공황장애에 걸리는구나' 정도였다.

몰랐지만 내 주변에도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은 굉장히 많았고

말로만 듣던 항우울제, 신경안정제 등을 내가 처방받아서 복용했었다.

처음엔 낯선 내 모습과 약들, 병원 프로그램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남의 일같이 생각했던 일들이 나에게 닥치자 내가 공황장애라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원장 선생님은 굉장히 훌륭하신 분이었고 그분의 수업들은 매우 유익했다.

공황장애의 발생원인과 극복방법, 공황상태의 이유까지 다 들을 수 있었다.

원인을 알고 공황이 생길 때 몸속에서 생기는 변화들을 이론으로 습득하고 나니

공황이 한결 견디고 쉬웠다. 조만간 사라질 증상이니.

나는 단체수업을 진행했고 생각보다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이 수업에 참관했었다.

비보이, 헬스트레이너, 학생, 부잣집 사모님, 누군가의 어머니, 건설업자 등.

많게는 20명 넘게 같이 수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며 오히려 적응하기 쉬워졌다.

나와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동지감을 느끼며

죽음과 같은 공포를 이겨내기 위한 같은 목적이 있는 사람들과 수업을 듣는 것은

나 스스로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인생 공부가 된 것 같다.

내 인생에서 공황장애가 없었더라면 나는 아마 지금까지도 미래지향적인 인생을 살고 있었을 것 같다.

공황장애 전 나는 현재에 살고 있지만 내 정신과 마음은 미래에 있었다.

지금이 힘들지만 미래를 위해서, 지금은 몸이 아프지만 미래를 위해서, 지금 즐기지 못해도 미래를 즐기기 위해.

나는 굉장한 조건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부와 명예를 좇고 지금보다 미래를 중요시 여기고 나보다도 남을 위해 살았다.

지금의 순간순간들이 쌓여 미래가 되는 것인데 예전엔 깨닫지 못했다.

머리로는 알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며 스트레스 속에 허우적대는 사람.

지금의 나는 무조건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공황장애가 나를 이렇게 만들어주었다.

아마도 그간 내 몸은 많은 신호들은 보냈었지만 그 경고를 무시한 나에게 최후의 통보를 날린 것이 아닐까.

공황장애. 공황(panic)은 우리 몸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위험으로부터 나를 지키지 위해 존재하는 굉장히 중요한 증상이다.

하지만 생명의 위협이 없는 상태에서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의 오류를 일으키는 것이

공황장애이다.

CASH Program 중 제일 기억에 남는 말은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은

인간의 진화에 한발 앞선 사람들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세상은 변화하고 그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 인간도 변화하기 위해 진화되는 것이 아닐까.

왠지 공황장애라는 딱지가 생긴 것 같았던 나에겐 꽤 기분 좋은 말이었다.

CASH Program을 마치고 이제는 세상에 나갈 준비가 된 것 같았다.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공황은 떨어져 나갈 생각을 안했다.

여전히 불안했고 긴장상태였다.

별다른 기대 없이 명상수업을 들었고 명상을 통해

공황, 불안, 우울을 잡지 않고 내려놓아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전이면 코웃음치던 명상같은 구닥다리가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나는 그래서 공황장애를 완치할 생각을 접었다.

그저 공황도 왔다 갔다 곡선을 그리는 바이오리듬이라 생각했다.

생각이란 참 우습게도 그 이후로는 공황발작이 무섭지 않았다.

그냥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공황이라는 것은 내가 위험하다고 느끼는 신호이니까.

'내 부교감신경계가 잘 작동하고 있구나' 하고 좋아했다.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결코 쉬운 생각이 아니다.

그 어마무시함을 겪어본 사람은 절대 가벼이 여길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걸 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생각의 차이가 더 이상 공황이 무섭지 않게 바꿔주었다.

공황장애란 감기같은 생각보다 흔한 병이었다.

'요새 왜 일 안다녀?'

'저 공황장애가 생겨서 일 쉬고 있어요'

'진짜? 고생하겠다. 나도 한 4년 됐어. 저 친구도 한 3년 됐고.'

'정말요? 전혀 몰랐어요. 고생 많으시네요.'

내가 공황장애를 커밍아웃?하자 주변 지인들 중에도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이 많음을 알게 되었다.

'난 2년 동안 사귄 여자친구가 계속 바람을 펴서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는데,

이상하게도 그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공황장애가 생겼어.'

'내 인생이 굉장히 무의하다고 생각이 들었고, 어느 날 미용실에 들어가는데 갑자기 공황을 겪었어.'

'하루에 3시간밖에 못 자고 공부만 하는데도 대학입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더니 공황장애가 생겼어요.'

'내가 공대라서 상대적으로 남학생이 많은데 언젠가부터 남자애들이 수업 도중에도 나를 힐끔거리고

나는 모르는 앤데 내가 어떤 수업을 듣는지 다 알고 있더라고. 너무 부담스럽고 싫어.'

'직장 상사가 성격이 이상해서 엄청 스트레스받아요. 그 사람 때문에 일을 그만둘 수도 없고 죽겠어요 정말.'

공황장애가 생기는 사유는 다양했지만 공통적인 이유는 스트레스였다.

사람마다 스트레스의 최대용량이 다르다 했었다.

각자의 최대치를 넘기면 어딘가에 탈이 나는 건가 보다.

공황장애를 통해 나는 겉과 속을 비례하여 채우지 않으면 탈이 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순 없다.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는 것은 본인이 못 느끼는 게 아닐까.

나는 지금도 내 스트레스를 위해 쉐퍼 호퍼를 마시고 있다.

내일 아침이면 띵띵 부은 내 몸을 느끼며 후회하겠지만

일단 지금은 소소한 행복을 챙기겠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떤 소소한 행복을 느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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